1장. 무너지기 전,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시작된다

처음엔 별거 아니다
그냥 한마디였다
“이 부분 수정해 주세요”
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이고
특별할 것도 없다
근데 이상하게
그날은 오래 남는다
집에 가는 길에도 생각나고
씻으면서도 떠오르고
자려고 누워도 다시 떠오른다
왜지
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
그때부터다
감정이 조금씩
쌓이기 시작한 건
예전에는 그냥 넘겼던 말들이
이제는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
말투 하나
표정 하나
시선 하나까지
괜히 의미를 붙이게 된다
그리고 자연스럽게
생각이 바뀐다
“내가 부족한 건가”
이 질문이
조금씩 늘어난다
처음엔 가끔이었는데
어느 순간부터
습관처럼 떠오른다
잘한 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
못한 건 계속 생각난다
이미 끝난 일인데도
머릿속에서 반복된다
이게 2단계다
잘한 것보다
부족한 것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
사람은 원래
잘한 걸로 버티고
못한 걸로 배우는데
이 시점부터는
반대로 간다
못한 걸로 버티고
못한 걸로 스스로를 깎는다
그래서 더 힘들다
근데도
대부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
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
“내가 예민한 거겠지”
“내가 더 잘하면 되지”
그래서 더 참고
더 맞추고
더 괜찮은 척을 한다
근데 이 선택이
생각보다 오래 간다
그리고 그 사이에서
하나씩 사라진다
자신감이 사라지고
기준이 흐려지고
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
근데 이때는 모른다
이게 무너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걸
그냥
조금 힘든 시기라고만 생각한다
그래서 더 지나치게 된다
2장.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점점 무너진다

이 상태가 계속되면
이제는 감정이 아니라
환경을 보기 시작한다
왜 이렇게 계속 힘들지
왜 나만 이렇게 느끼지
그때부터
비교가 시작된다
원하지 않아도
계속 보게 된다
누가 더 잘하는지
누가 더 인정받는지
누가 더 빨리 올라가는지
이걸 보는 순간
기준이 바뀐다
내 기준이 아니라
남 기준으로 나를 보기 시작한다
“쟤는 저렇게 하는데”
“나는 왜 저 정도도 못하지”
이 생각이 반복되면
자존감은 빠르게 떨어진다
이게 3단계다
비교가 시작되면서
열등감이 생기는 순간
여기서 끝나지 않는다
한 번 흔들린 기준은
쉽게 돌아오지 않는다
이제는
내가 잘하고 있는지조차
판단이 안 된다
예전에는 스스로 알았는데
지금은
누가 말해줘야 안다
이게 4단계다
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태
그래서 더 맞추게 된다
사람에 맞추고
분위기에 맞추고
회사에 맞춘다
내가 하고 싶은 방향이 아니라
틀리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다
이 선택이 쌓이면
내 기준은 점점 사라진다
처음에는
조금씩 흐려지다가
어느 순간
거의 남지 않는다
이때부터는
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
맞추고 있는 상태가 된다
그래서 더 지친다
내가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에
내가 책임지는 느낌도
내가 만족하는 느낌도 없다
그냥
틀리지 않으려고
버티는 상태
그리고 이걸
매일 반복하고 있었다
3장. 결국 나를 잃어버리는 단계

여기까지 오면
이제 더 이상 버티는 느낌도 아니다
그냥 하는 거다
생각 없이
감정 없이
그대로 반복한다
아침에 일어나고
출근하고
일하고
퇴근하고
하루가 지나간다
근데 남는 게 없다
이게 5단계다
결과로만
나를 판단하게 되는 순간
오늘 일을 잘 끝내면 괜찮은 날
조금이라도 틀리면 별로인 날
이 기준으로
하루를 나눈다
점점
나라는 사람이 아니라
성과로만 나를 보게 된다
그래서 더 공허하다
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
남는 게 없는 느낌
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
내가 뭘 해냈는지만 남는다
이 상태가 계속되면
마지막 단계로 간다
이게 6단계다
버티는 것만 남고
감정이 무뎌지는 상태
힘든 것도 익숙해지고
지친 것도 당연해진다
그래서 더 위험하다
괜찮은 게 아니라
느끼지 못하는 상태다
그리고 어느 날
이상한 순간이 온다
아무것도 하기 싫다
이유도 없고
계기도 없는데
그냥 멈추고 싶다
일이 많아서가 아니다
사람이 힘들어서도 아니다
그동안
쌓여 있던 것들이
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순간
그때 알게 된다
아
나 지금 많이 무너졌구나
근데 더 늦게 알게 되는 건
이게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는 거다
처음 그 한마디
별거 아니라고 넘겼던 그 순간부터
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
조금씩
계속
나를 잃어가고 있었다는 걸















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