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장. 비교는 늘었는데 기준은 사라졌다

요즘은 누가 잘 사는지
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.
열면 보이고,
스크롤하면 나온다.
사람들의 결과만 모여 있는 장면들.
잘 된 순간,
웃고 있는 얼굴,
괜찮아 보이는 일상.
문제는
그 장면들이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.
예전에는
나와 비슷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았다.
비슷한 나이,
비슷한 상황,
비슷한 출발선.
지금은 다르다.
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결과가
내 기준이 된다.
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
보이지 않는다.
지금의 나와
비교할 수 없는 조건도
가려진다.
그래서 비교는 쉬워졌는데
기준은 사라졌다.
이 비교는
나를 앞으로 밀지 않는다.
오히려 멈추게 만든다.
“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데
나는 왜 이럴까.”
이 질문이 반복될수록
내 삶은 점점 작아 보인다.
충분히 애쓰고 있어도
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고,
잘 버티고 있어도
뒤처진 기분이 든다.
비교는 원래
방향을 잡기 위한 도구였다.
하지만 지금의 비교는
자존감을 깎는 장치가 됐다.
그래서 다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
나만 힘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.
문제가 있는 건
내 삶이 아니라,
비교의 방식이다..
3장. 잘 살고 있다는 기준이 너무 높아졌다

요즘은
‘잘 살고 있다’는 말의 기준이
조용히 바뀌었다.
예전에는
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
충분했다.
큰 문제 없이 하루를 마치면
그걸로 괜찮았다.
지금은 다르다.
잘 살고 있다는 말은
눈에 보이는 결과를 전제로 한다.
성장하고 있는지,
앞서가고 있는지,
남들보다 나은 장면이 있는지.
문제는
이 기준이 평균이 아니라는 점이다.
상위의 장면,
잘 된 순간,
가장 빛나는 결과만이
기준처럼 떠다닌다.
그래서 아무리 애써도
늘 부족한 느낌이 든다.
충분히 하고 있는데도
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.
이 기준 안에서는
쉼도 불안해지고,
멈춤도 뒤처짐처럼 느껴진다.
사실 많은 사람들은
잘 살고 있는 게 아니라
잘 살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.
그래서 다들 괜찮아 보이지만,
속은 비슷하게 흔들린다.
다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
나만 힘든 것 같은 이유는
내가 못나서가 아니다.
기준이 너무 높아졌고,
그 기준이 너무 조용히
우리 삶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.
이걸 알아차리는 순간,
비교는 조금 느슨해지고
내 삶은 다시 내 속도로 돌아온다.
힘든 건
이상한 게 아니다.
이 시대를 버티고 있다는
가장 솔직한 신호다.


















